연간 과학자 1000명 만나는 CEO 누구?


[인터뷰] 지영석 엘스비어 회장, 과기인 인터뷰로 논문 데이터 분석법 구축
                "韓 뛰어난 과학기술 영문 업로드로 국제 노출빈도 높여야"

엘스비어는 1580년대 작은 책방을 시작으로 100여개의 회사와 합병하며 몸집을 키웠다. 현재는 과학기술과 의학학술지 1/4가량을 전 세계적으로 출판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 지영석 엘스비어 회장이 향후 출판계는 '솔루션 콘텐츠'로 변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단순 정보제공이 아닌 독자가 원하는 답을 빨리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한다는 것이다.

"종이콘텐츠에서 전자콘텐츠, 이제는 솔루션콘텐츠 시대가 도래했다. 더이상 서적은 단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닌 독자가 원하는 답을 제시할 수 있어야한다.  향후 출판사는 콘텐츠를 재사용해 독자들이 원하는 답을 찾을 수 있는 분석 툴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랜싯(의학)', ‘셀(생물학)', '테트라헤드론 레터스(화학)' 등 유명 과학지 및 의학 학술지를 배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출판사 '엘스비어'의 지영석 회장은 향후 출판계가 콘텐츠 제공뿐 아니라 답을 찾아 정보를 빨리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한다고 강조했다.

소설이나 취미 등 일반서적은 아직 더디지만 미국의 경우 법률 디베이스, 과학기술, 의학, 시스템 관련 서적에서는 이미 이 같은 움직임 포착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지난 주 KAIST 강연을 위해 방한한 그를 귀국 길 공항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4박 5일 동안 30분의 여유도 없을 정도로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지쳐있을 법도한데 과학기술과 출판업계 이야기를 꺼내는 그의 모습에서 열정이 묻어났다.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엘스비어 회장이 된 과정과 한국 과학출판계의 발전방향, 향후 계획 등을 들어봤다.

◆ 금융업계에서 출판계로…세계최초 '주문성 출판'으로 대박

지 회장은 지성구 전 세네갈, 핀란드 주재 대사의 아들로 미국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까지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며 한국어를 익혔다는 그는 다시 미국으로 프린스턴대학 경제학과를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콜롬비어대학에서 MBA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아메리칸 익스프레스(금융서비스를 하는 미국회사)에서 8년간 일하며 남미, 유럽, 아시아, 동남아 등 세계 곳곳에 해외 파견근무를 다녔다. 금융계에서 성공적인 회사생활을 하던 그는 돌연 1992년 세계 최대의 출판그룹인 '잉그램'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그가 유통계열로 옮기게 된 이유는 멘토인 브론손 잉그람 때문. 그를 위해 언젠가 일하겠다고 약속 했었고, 그 약속에 따라 오랫동안 일했던 금융계를 떠나 출판계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잉그람사로 옮긴 것을 가장 잘한 직업적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고 그것이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

인그람에서의 배움을 바탕으로 1997년 자회사 '라이트닝 소스'를 설립해 세계최초 주문형 출판(POD)를 선보였다. 대량으로 찍어내는 것이 보통이었던 출판업계에 소량출판은 그야말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 사업은 소위 말하는 대박을 쳤다.

"책을 한꺼번에 찍는게 아니라 원할 때 한권씩 찍어주는 주문성 출판이다. 재고 없이 발간할 수 있어 손해가 적다는 것이 장점이다. 이러한 책들 중에는 모래 속 진주들도 많았다. 책의 저자가 어느 날 유명인이 돼서 대량으로 인쇄하는 일이 수백 번이나 발생했다."

인그람에서의 성공에서 그는 멈추지 않았다. 세계 최대 단행본 출판사 랜덤하우스에서 한국과 일본의 현지언어로 출판사를 만들어 랜덤하우스 아시아 창립회장을 지냈다. 성공 후에도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모습에 엘스비어는 2005년 그를 부회장으로 모시고 싶다고 연락해왔다.

1880년대 약 100여개의 회사가 합병해오며 성장을 거듭한 엘스비어는 깊은 역사 속 다양한 성공과 실패를 겪으며 노하우와 출판기술을 가진 회사로, 지 회장 역시 늘 관심 갖고 있었다. 특히 경제학을 공부하기이전 화공과를 선택했던 만큼 과학기술에 지대한 관심이 있던 그였기에 부회장 제안을 받아들였고 경영을 담당한 후 4년만인 2009년 12월 회장의 자리에 오르게됐다.

그는 엘스비어에서 연간 1000여명이 넘는 학자들을 만나 방대한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툴 개발에 적극 투자한 바 있다. 이에 연구자들이 학술연구 추세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논문의 표절 검색 등 데이터 분석법을 다양하게 구축해 국내외 구독기관수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

◆ 종이와 디지털 출판 넘어 '독자에게 답 주는 콘텐츠 만들어야'

그가 엘스비어의 회장이 된 후 IT기반 디바이스 발달로 e-book이 성황을 이루기 시작했다. 지 회장이 2010년 IPA(출판인의 권리 보호 및 증진, 출판·표현의 자유, 저작권 보호 등을 위해 1896년 설립된 단체) 회장에 당선한 후 ‘10년 안에 전자책이 종이책을 앞지를 것’이라고 단언했지만 그 속도가 더 빨라지는 등 출판업계에 지속 변화가 일었다.

그는 작가와 독자를 연결하기 위한 끊임없는 혁신이라는 비전을 갖고 '정확한 정보를 적절한 맥락에서 적절한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을 출판이라고 정의했다. 이에 출판물 저작권 문제와 세계지적재산권기구의 저작권 예외 조항 논의 등을 중요하게 다뤄왔다.

이제 출판계는 또 한 번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세분화 및 전문화되는 콘텐츠, 그리고 독자들에게 일방적인 정보제공이 아니라 그들의 궁금증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콘텐츠 제작이 필요할 때가 도래한 것이다.

엘스비어는 1580년대 작은 책방을 시작으로 100여개의 회사와 합병하며 몸집을 키웠다. 현재는 과학기술과 의학학술지 1/4가량을 전 세계적으로 출판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 엘스비어는 1580년대 작은 책방을 시작으로 100여개의 회사와 합병하며 몸집을 키웠다. 현재는 과학기술과 의학학술지 1/4가량을 전 세계적으로 출판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그는 "종이 콘텐츠에서 디지털, 그리고 이제는 S(솔루션)콘텐츠로 가야한다"면서 "더이상 출판사는 콘텐츠를 만드는 심플한 조직이 돼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뇌 과학을 예로든 그는 "그냥 읽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왜 뇌가 움직이는지 대답이 나오는 콘텐츠로 변화하고 있다. 우리도 콘텐츠를 재사용해 독자들이 원하는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분석 툴을 만들어야한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일반 서적에서 이러한 변화는 아직 더디지만 법률디베이스, 시스템, 의학, 과학기술 등 정보분야 출판사에서는 이 같은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이같이 양질의 콘텐츠가 각광을 받기 시작함에 있어서 그는 "소규모 출판사도 좋은 콘텐츠를 발간하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고 조언하면서 "고퀄리티 위주로 전문화를 시켜야한다. 물론 과학기술은 점점 세분화되면서도 여러 분야를 아울러야하는 모순도 있지만 예를 들어 커피에 대한 책을 출판한다던지, 학술이면 뇌 과학 서적만 출판하는 등 세분화돼가는 문화에 출판계도 따라 줘야한다"고 말했다.

◆ 한국 출판계 세계로 뻗어나가려면? 영어 필수

한국의 과학출판 현황에 대해 그는 "뛰어난 과학기술 연구에 비해 출판은 미미한 수준"이라고 진단하면서 '영어'를 강조했다.

"과학기술이란 글로벌한 것이다. 국내에만 알린다면 상관없지만 전 세계 사람에게도 인정을 받기위해서는 세계적인 발표를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세계 추세인 영어로 발표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어가 부담스럽다면 서두라도 영어 번역해 인터넷에 업로드 하는 것은 어떨까. 그래야 한 문장과 단어로 세계인이 검색해 한국의 과학기술을 들여다 볼 수있을 것이다."

그에 따르면 과거엔 독일어나 일본어, 러시아어 등 저널도 많이 읽혔지만 세계 공통어가 영어가 되면서 영어 외 언어 저널은 잘 읽히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는 "우리나라 출판업계가 논문저널을 가지고 세계 최고가 되는 것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지금처럼 열심히 연구한 결과들을 한국 저널로 잘 만들어 보급하고, 인터넷을 통해 번역 후 업로드 하는 것만으로도 성장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예상 된다"고 조언했다.

앞으로 그는 회사경영에 힘쓰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행운을 나눠주는 것이 목표다. 그가 수백명의 젊은이들의 멘토를 자처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많은 행운이 있었다. 경영자의 자리도 그렇지만 이렇게 건강할 수 있는 것 또한 행운이라 생각한다. 나에게 주어진 행운을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지 늘 고민한다. 이에 이민자들이 롤 모델을 삼을 수 있도록 그들이 배울 수 있는 행동을 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젊은 친구들과 대화하고 그들의 고민을 나누며 조언하는 멘토를 오랫동안 해왔다. 앞으로도 내가 맡은 역할에 있어서 최고가 됨과 동시에 젊은이들을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그는 2009년 포스트 아시아에 보도된 가장 성공한 재미동포 25인에 선정된 바 있다. 그간의 경력뿐 아니라 1,5세, 2세들과 함께 KOREAN AMERICAN COMMUNITY FUND를 설립, 한인사회 발전에 크게 기여한 바를 인정받았다.

한편, 엘스비어는 1580년대 한 가족이 레이든대학 앞에서 책방을 경영한 것이 시작이다. 당시 책방은 인쇄소이자 출판을 같이 하는 멀티시스템으로 움직였다. 1941년까지 문학과 철학, 사회를 주로 다뤘으나 계속 되는 전쟁으로 인해 세계가 과학기술에 투자함에 따라 방향을 과학기술분야로 전환했다. 1880년대부터 100개의 회사와 합병하며 몸집을 키우면서 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SCI)이 독점하던 국제적 인용색인 DB시장에 후발주자로 뛰어들었지만 5000개가 넘는 전 세계 출판사로부터 논문정보와 인용정보를 제공하는 등 현재 과학과 의학 학술지 1/4가량을 전 세계적으로 출판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김지영 기자 (Email: orghs12345@hellodd.com)

출처 : HelloDD.com (http://www.hellodd.com/news/article.html?no=42538)